<앵커> 올해로 광복 78주년을 맞는 오늘(모닝:어제) 한국에서는 원자폭탄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펜하이머의 생애를 다룬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광복절에 맞춰 개봉한 영화 오펜하이머의 의미와 그의 삶에 대해 이하예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8월15일 대한민국 광복 78주년을 맞아, 전국각지에서, 제78주년 광복절을 맞아 독립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기념행사가 열렸고, 북한에서도 (광복절) 78주년을 맞아 경축행사가 진행됐습니다.
이런가운데 한국에서는 광복절에 맞춰 개봉한 영화 ‘오펜하이머’가 사전 예매율 56%라는 압도적인 기록을 세우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중국에선 8월 말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원폭 투하 78주기를 맞는 일본에서는 아직까지 개봉이 미정인 상태입니다. 세계 70여 개국에서는 이미 지난 7월 개봉해 흥행 수익 6억 달러를 돌파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최고 히트작으로 흥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그리고 8월 9일 나가사키에 미국이 원자폭탄을 투하하지 않았다면,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적인 항복은 없었을 수 있는만큼 우리 민족의 광복 역사에서 원자폭탄의 의미는 뗄 수 없이 큰데요.
원자폭탄 개발자의 삶을 다룬 영화 '오펜하이머'에 대해 더 자세히 조명해 봅니다.
1945년 미국 트루먼 대통령은 일본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원자폭탄 사용을 승인했고,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실제 전쟁에서 핵무기가 사용됐습니다.
1904년 뉴욕에서 태어난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부유한 유대가정에서 태어나 하버드대 화학학사, 독일 에서 물리학 박사를 마치고,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재직했습니다. 나치 치하 독일이 우라늄 핵분열을 발견하자, 자유 진영 국가들은 나치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개발하기 위해 논의했고, 미국정부 승인하에 역사상 최대 규모의 맨해튼 프로젝트가 시작됐습니다. 맨해튼 프로젝트를 위해, 로스앨러모스 국립 연구소장으로 임명된 오펜하이머는,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과 협력해, 2년 7개월여 만에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했고 마침내 1945년 7월 16일, 뉴멕시코에서 진행된 ‘맨해튼 프로젝트’ 테스트에 성공합니다. 이어 8월 6‧9일 일본 히로시마‧나가사키에 두 개의 원폭이 투하되며, 20만명의 피폭 사망자를 낳았습니다. 당시 오펜하이머는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고 탄식했습니다.
주변 과학자들로부터는 물리학 300년 역사를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바쳤다며, “위대한 물리학 세일즈맨”이라는 자조섞인 말을 들어야했고, 원자폭탄 개발 이후에는 “내 손에 피가 묻은 것 같다”고 호소해 “울보 물리학자”라는 소리까지 들어야했습니다
국가를 위해 나치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만들어내야했지만, 원폭 통제에 대한 통제권은 없었던 그는 1967년 뉴저지 프린스턴에서 61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습니다. 원자폭탄 개발자로서의 고뇌와 모순을 그린 영화 오펜하이머가 광복절에 맞춰 개봉하며 그 의미를 짚어보는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
K-radio 이하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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