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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8
* 감자의 몸/ 길상호
감자를 깎다 보면 칼이 비켜가는
움푹한 웅덩이와 만난다
그곳이 감자가 세상을 만난 흔적이다
그 홈에 몸 맞췄을 돌멩이의 기억을
감자는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벼랑의 억센 뿌리들처럼 마음 단단히 먹으면
돌 하나 깨부수는 것 어렵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뜨거운 夏至의 태양에 잎 시들면서도
작은 돌 하나도 생명이라는
뿌리의 그 마음 마르지 않았다
세상 어떤 자리도 빌려서 살아가는 것일 뿐
자신의 소유는 없다는 것을 감자의 몸은
어두운 땅 속에서 깨달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 웅덩이 속에
씨눈이 하나 옹글게 맺혀 있다
다시 세상에 탯줄 될 씨눈이
옛 기억을 간직한 배꼽처럼 불거져 있다
모르는 사람들은 독을 가득 품은 것들이라고
시퍼런 칼날을 들이댈 것이다
* 몸의 신비, 혹은 사랑 / 최승호
벌어진 손의 상처를
몸이 스스로 꿰매고 있다.
의식이 환히 깨어 있든
잠들어 있든
헛것에 싸여 꿈꾸고 있든 아랑곳없이
보름이 넘도록 꿰매고 있다.
몸은 손을 사랑하고 있는 모양이다.
몸은 손이 달려 있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모양이다.
구걸하던 손, 훔치던 손,
뾰족하게 손가락들이 자라면서
빼앗던 손, 그렇지만
빼앗기면 증오로 뭉쳐지던 주먹,
꼬부라지도록 손톱을
길게 기르며
음모와 놀던 손, 매음의 악수,
천년 묵어 썩은 괴상한 우상들 앞에
복을 빌던 손,
그 더러운 손이 달려있는 것이
몸은 부끄럽지 않은 모양이다.
벌어진 손의 상처를
몸이 자연스럽게 꿰매고 있다.
금실도 금바늘도 안 보이지만
상처를 밤낮없이 튼튼하게 꿰매고 있는
이 몸의 신비,
혹은 사랑.